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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04 13:52
2016년 7월 31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757  
주의 인도하심 따라 [시편 23:1-6]
성도 여러분, 우리가 ‘소리’를 들으려면 어디를 통해서 듣죠? 바로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리를 듣기까지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 과정이라도 기능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우리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귀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바로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능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우리의 귀 안쪽에 있는 달팽이관이라고 하는 ‘기관’이 바로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시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즉 핸들과 연결된 양쪽 바퀴 축의 각도가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차가 제대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양쪽 바퀴 축의 각도를 정확하게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균형은 ‘건물’을 짓는데도 아주 중요합니다. 실제로 건물을 지을 때 다림줄이라는 것을 당겨서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데,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수평과 수직을 맞추어서 건물을 세워야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고, 그 건물이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균형’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바로 ‘조화’입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그러한 다른 것들과 균형을 이룰 때 그것을 우리는 흔히 ‘조화’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가령 우리가 듣는 음악의 경우 서로 다른 음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조화(화음)를 이룰 때, 그 음악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우리의 귀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직분’과 그에 따르는 ‘맡은 일’과 ‘하는 일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다양함 속에서 조화가 이루어지고 균형 또한 유지되기 때문에, 교회가 존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야기할 때 ‘세운다’, ‘건축한다’는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교회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숙하고 온전하게 만들어지며 세워져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과연 어떤 관심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세워가야만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23편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친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고, 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같은 구절들 때문에, 그 분위기가 참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눈여겨보면, 우리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또는 ‘원수의 목전’이라는 구절을 보면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문의 시인은 외적 환경과 싸우고, 또 자기 자신과 싸워가면서 ‘평화’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평화’를 구약성경에서는 뭐라고 부를까요? ‘샬롬’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평화라고 하면 보통 삶의 외적 조건부터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샬롬의 평화는 ‘관계성’ 속에서 나오는 말이며 ‘존재’와 관련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느냐,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바로 샬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내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인지에 따라 평화의 유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샬롬의 평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역시 평화를 그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라는 분위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시인이 과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1절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대로 말하자면 이 시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이 시에서 모든 일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런 생각이 그 사람의 주관이 되고, 또 이런 생각과 주관이 한데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을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누구나 믿음과 교회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기준을 따라 믿음과 교회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의 기준만 강하게 주장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믿음은 독선적이 될 수밖에 없고, ‘교회’에 대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시편 23편 말씀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와 헌신을 감당하며 서로간의 교제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목자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우리를 가리켜 ‘양’이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아마 그만큼 우리 인간이 양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 같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또 양과 목자로 보자면 우리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양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앞서 균형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잔이 넘치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풍성함이 넘치는데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넘치는 풍성함이 있어도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온전히 누리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이룬 풍요로움만을 전부로 알며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친히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친히 마련하신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온전히 누리시는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