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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29 11:06
2016년 7월 24일 "팬인가, 제자인가(not a fan)"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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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인가, 제자인가(not a fan)
왕하 2:6-14, 눅 9:57-62

저는 오늘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의 ‘not a fan,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을 여러분에게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을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저자(著者)인 ‘카일 아이들먼’은 미국의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교회’의 교육목사입니다. 평소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자(著者)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disciple)가 아닌 팬(fan)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돌이켜 ‘제자의 길’을 찾은 경험과 말씀을 담은 글입니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의 ‘팬인가 제자인가’란 이 책을 읽으면 대부분은 스스로에게서 놀라움과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의 팬인가 제자인가’를 나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결코 나는 예수님의 팬이 아님을,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라고도 자신있게 말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니까 그날(주님 다시 오실 때), 많은 자칭 그리그도인들이 예수님 앞에 당당히 섰다가 “나는 너를 모른다. 나에게서 떠나가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팬(fan)과 제자(disciple)는 무엇이 다를까요?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팬(fan)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좋아해서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데,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disciple)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팬(fan)들은 ‘주여! 주여!’하고 말로만 외칠 뿐 그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않지요. 말만했지 말한 대로 행한 흔적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팬(fan)들은 감정을 믿음으로 혼동합니다. 감정은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믿음이 아니고, 행동이 따라야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犧牲)’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알고 난 그리스도인은 한 단계 성장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도 잃고 방향도 잃는 그저 그런 ‘선데이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게 될거라고 말합니다. 그저 ‘팬(fan)으로서의 삶’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사도 바울이전의 이름)을 부르셔서 ‘복음 전도자’로 삼으셨을까요? 예루살렘에서 핍박하고 이제는 다메섹(다마스커스=지금의 시리아의 수도)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주님의 일에 열심인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는 법인데, 어째서 하나님은 그와 반대로 복음 전파에 큰 방해를 하던 사울(사도 바울)을 기독교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로 삼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사울=사도 바울)의 열심(열정)을 보시고, 즉(뭡니까?) 기독교를 반대 하는데 열심이었던 그를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열심을 내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구약성경 열왕기하에서 등장하는 ‘엘리사’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번씩이나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하는 스승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스승의 뒤를 따라서 결국은 (스승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스승의 뒤를 따르면서 갑절의 영감과 능력을 구한 목적(目的)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스승인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자 다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일이든 세상 일이든 간에,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기가 참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신약성경의 본문인 [눅9:57-62]에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면(제자의 길을 가려면) ‘3가지 선결사항(先決事項)’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세상에 대한 집착(執着)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눅9:57]에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눅9:5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무나 가혹한 말씀을 그에게 합니다. [눅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현대어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기고, 너는 하나님 나라가 온 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우리의 생활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도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천국을 향한 믿음의 생활이냐, 아니면 이 세상으로만 끝낼 세상 중심의 생활이냐, 하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3) 미래 지향적인 삶을 추구 하여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눅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일을 아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일 때문에 삶의 발전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과거가 자신의 삶에 거울이 될지언정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서 때때로 손해를 많이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여 원수처럼 불편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로,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예수님의 이러한 당부를 바로 지키지 못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열심히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는 삶’이란, 머리 둘 곳도 없이 편히 쉬지 못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멋있게 살고 예수님도 잘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일찍이 예수님은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거나 사랑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예수님의 팬입니까? 제자입니까?’